며칠 전 퇴근길 지하철이었어요. 꽤 붐비는 2호선이었는데, 갑자기 제 앞에 서 있던 한 20대 남성분이 뻣뻣하게 굳는가 싶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몇몇은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분은 온몸을 강하게 떨고 있었고, 입에는 거품이 보였습니다. "누가 119 좀...", "저 사람 입에 뭐라도 물려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다급한 목소리들이 오갔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그 순간 제가 아는 '정확한' 대처법이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주변에 침착한 한 시민분이 "다들 비켜주세요! 머리 다치지 않게 가방 좀 주세요!"라고 외치며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집에 돌아와 '뇌전증'에 대해 미친 듯이 검색하고 공부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저 혼자였다면, 만약 내 가족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너무나 부끄럽고 아찔했습니다.


우리는 뇌전증을 '간질'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많이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주는 사회적 편견과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이 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날의 제 부끄러움을 반성하며, 우리가 뇌전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오해들과,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 응급 대처법'에 대해 제 노하우를 담아 자세히 이야기해 드릴게요.


1. 뇌전증, '간질'이 아니라 뇌 신경계 질환입니다

가장 먼저 바로잡고 싶은 오해입니다.


많은 분이 아직 '간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 용어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조장할 수 있어 2009년부터 공식적으로 '뇌전증(Epilepsy)'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습니다.


"뇌전증은 정신병이나 불치병이 아닙니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뉴런)가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흥분하여 비정상적인 신호를 방출하고, 이로 인해 경련, 의식 소실, 감각 이상 등 다양한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신경계 질환'입니다.


감기에 걸리듯 누구나 걸릴 수 있고, 특히 요즘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뇌졸중, 치매, 뇌종양 등 뇌 손상으로 인한 노년기 뇌전증 환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해요.


즉, 유전되는 희귀병이라는 오해와 달리, 뇌전증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마치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약물로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는 '만성 질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2. "쓰러져야만 발작?"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증상들

제가 지하철에서 목격한 것은 '대발작(전신 강직-간대 발작)'이라고 불리는, 뇌전증의 가장 잘 알려진 증상입니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경련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는 형태죠.


하지만 제가 이번에 공부하며 가장 놀랐던 사실은, 이것이 뇌전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뇌전증 발작은 뇌의 비정상적인 신호가 '어느 부위에서' 시작되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부분 발작 (초점 발작)


의식이 있는 경우: 한쪽 팔이나 다리만 떨리거나,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후각 발작), 헛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의식이 없는 경우 (복합 부분 발작):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갑자기 하던 행동을 멈추고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거나, 입맛을 쩝쩝 다시거나,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는 등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약 1~2분간)


만약 우리 아이가 수업 시간에 자꾸 '멍 때린다'고 혼나거나, 어르신이 잠깐씩 '정신이 나간 것처럼' 딴소리를 하신다면, 단순한 버릇이나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증상들이 사실은 '부분 발작'일 수 있으며, 조기 발견과 치료의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3. 골든타임 5분! 뇌전증 응급 대처법 (DO & DON'T)

자,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날 지하철에서의 저처럼 당황하지 않으려면, 이 원칙만은 꼭 기억해 주세요.


🚫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DON'T)

입에 손가락, 수건, 숟가락 등을 넣지 마세요!


제발! 이것만은 기억해 주세요. 경련 중에는 턱의 힘이 엄청나서 손가락이 절단될 수도 있고, 이물질이 기도를 막아 질식할 위험이 훨씬 큽니다. (혀를 깨물어 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억지로 팔다리를 주무르거나 붙잡지 마세요.


경련을 억지로 멈추려 하면 환자가 다치거나(골절, 탈구) 방어적인 반응으로 공격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발작 중에 물이나 약을 먹이지 마세요.


의식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면 흡인성 폐렴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합니다.


인중을 누르거나 뺨을 때리는 등, 의식을 깨우려 하지 마세요.


발작은 의지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반드시 해야 할 행동 (DO)

(가장 중요)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주변의 위험한 물건을 치워주세요.


경련으로 인해 머리나 몸이 부딪혀 2차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안경을 벗기고, 넥타이나 벨트, 셔츠 단추를 풀어 호흡을 편하게 해주세요.


머리 아래에 부드러운 것(쿠션, 가방, 접은 옷)을 받쳐주세요.


뇌 손상이 아닌, 넘어지면서 생기는 '머리 외상'이 가장 무섭습니다.


발작이 멈추면, 환자를 옆으로 돌려 눕혀주세요. (회복 자세)


입안의 침이나 거품, 구토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기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합니다.


발작 시간을 꼭 확인하세요.


대부분의 발작은 1~3분 이내에 멈춥니다. 하지만 5분 이상 지속되거나, 발작이 멈췄는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거나, 짧은 발작이 연달아 반복된다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합니다. (이때는 '뇌전증 지속 상태'라는 응급 상황일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편견보다 따뜻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날의 경험 이후, 저는 뇌전증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발작 그 자체'가 아니라, 발작을 목격한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쓰러졌을 때, 사람들이 나를 피하거나,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잘못된 응급처치로 나를 더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이죠.


뇌전증은 꾸준한 약물 치료와 관리로 약 70% 이상이 발작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동정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와 따뜻한 지지입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만큼은, 언젠가 길에서, 지하철에서 발작으로 쓰러진 분을 만났을 때, 저처럼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분의 '골든타임'을 지켜주는 든든한 시민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